TANGLE

[책] 이유 없는 두려움 리뷰





표지와 내용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유 없는 두려움이라는 말 자체도 잠시 서정적인 느낌이 왔다 가는 것 같은데, 벤치에서 고뇌하는 남자가 그려진 미술작품이 떡하니 표지에 있으니 여느 자기계발서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게다가 제목 글씨체는 바탕체이다!). 자기계발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책 뒷면에서 나오는 각종 수치들 때문이었다. 위험에 대한 객관적인 수치가 적혀있는 걸 보고선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구나, 적어도 데이터를 말해가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겠구나 했다.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더 나아가 나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그런 부류 글은 좋아한다. 이기적 유전자같은 책 좋아한다. 나는 나를 알고 싶어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싶어서 그런 책을 좋아한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했다가 허황된 얘기에 질려 과학적인 색채를 띠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은 거지.





심리학에 관한 생각


이유 없는 두려움에 빠지지 않으려면 머리를 깨워서 제 할 일을 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깊이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 이유 없는 두려움 466p


저자는 심리 이원 체계(가슴과 머리-간단히 말해 가슴은 감정적인 부분이고 머리는 이성적인 부분)를 받아들이고 최근 지구상에 있었던 온갖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의 판단은 가슴에 좌지우지 된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온갖 심리학자들의 실험을 이야기하고 전형성/사례/앵커링/호오의 법칙 등의 용어를 풀어낸다. 조금 난잡한 느낌이다. 그러나 책이 주는 메시지는 꽤 명료하다. 위는 저자가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반 대중들에게 주장하는 메시지다. 가슴의 섣부르고 잘못된 판단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머리'를 개입시키라는 것이다.


책이 과학적인 색채를 띠긴 하지만 그렇게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는 너무 사례 해석 중심이기 때문이다. 책의 중반까지는 저자 주장의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한다고 다양한 심리 실험과 그에 따른 결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중반 이후로는 사건만을 다루면서 자기 주장을 견고하게 다진다. 9.11 테러 당시 사람들 심리 상태, 그 이후로 벌어지는 언론, 정부, 각종 단체의 두려움 마케팅과 그에 놀아나는 사람들. 같은 패턴으로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 살인 사건, 대마초, 약물, 암, 원자력 발전소 등 각종 이슈를 설명한다. 이것들이 과학적이지 않은 이유는 과학적으로 추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에 모호한 부분이 많지만(애초에 심리는 뇌에서 일어나므로 뇌과학이 더 과학적이잖아!), 심리학이 과학적이라고 어느정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썼기 때문이다. 그 방법론이라 함은 견고하게 짜여진 실험으로 사람을 관찰하고 이론을 정리하는 것이다. 물론 실험이란 것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온갖 이론이 난무한다. 내가 심리학 용어를 잘 믿지 않는 이유다. 이런 나름 견고하다고 주장하는 실험에서도 논란이 다분하니 실제로 벌어진 사건에는 얼마나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있겠는가. 저자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있으나마나한 부분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용어인, 말 그대로 '확인 편향'(무의식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는 것)이 쉽게 일어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의 주장을 쉽게 흡수한 나는 뒷부분이 지루할 수 밖에 없었다. 암이나 원자력 발전소 얘기가 나오면 그래, 네 말대로라면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그래, 중얼중얼거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재밌는 부분은 있다. 특정 사건에 대한 이야기, 즉 9.11테러 이후 대 테러 정책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여론을 부시가 어떻게 끌여올렸는지 등의 이야기는 재밌었다. 난 그 사건 잘 모르거든. 내가 몇 살 때야.. (6살)





조금, 생각의 자극.


어찌되었든 책에서 통찰력을 얻었다. 심리 이원 체계. 행동경제학과 인지심리학에 대해 검색을 해도 마땅한 용어를 찾지 못해서 그냥 심리 이원 체계라고 하겠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서 공포스러울 때 사실 그것을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아무런 위험이 없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면서도 공포심은 왜 드는가? 이원 체계의 주장은 그러한 감정으로 석기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이 보다 효율적으로 위험을 회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성의 논리는 무시되기 십상이다.


나는 그 주장을 다른 감정에 적용시켜보고 싶은 것이다. 저자는 불안한 감정밖에 얘기하지 않았다. 위험을 다루는 감정은 불안이니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다. 행복, 사랑, 우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면 스트레스까지. 불안, 혐오, 공포라는 감정을 통해 위험을 회피하고자 한다면 행복, 사랑, 우울은 왜 존재하는가? 그것 또한 석기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이 어떤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 어떤 일이란 건 무엇일까?종족 보존을 위함은 당연하다. 어떤 식으로 종족 보존을 꾀하려는 것인가. 섹스, 협력과 경쟁, 공동체 생활 등 그럴듯한 결론을 내려볼 수는 있겠지만 허점 투성이이다. 


책을 읽고선 대니얼 카너먼(책에서 등장하는 이론을 체계적으로 연구해온 사람)같은 심리학자들의 논문을 직접 찾아볼까 생각도 해보았다. 좀 더 현대 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더 깊게 이해해보고 싶다. 아무렴 그 사람들이 나보다 인간 심리에 대해 훨씬 깊게 고민하고 연구를 했을 터. 그러나 무리다. 나 스스로서는 어설픈 결론밖에 내지 못한다지만 내 모든 에너지를 논문 찾아보고 분석하는데 쏟아부을 수는 없다. 다음에 읽을 책들이 조금 더 통찰력을 열어주길 바랄 뿐이다. 찾아보니 대니얼 카너먼이 직접 쓴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교양서가 있네. 읽어봐야지.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저자의 생각이 저 한 줄-'깊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로 끝난다는 것이다. 자기는 연구를 별로 안했는지 직접 연구하거나 주장하는 내용은 없었다. 저자가 말한 '깊게 생각하는 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단지 우리 인간은 머리보다 가슴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현상을 설명할 뿐이다. 머리를 판단에 잘 개입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하면 언론의 현란한 혀놀림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가?


사실 자신의 생각마저도 비합리적이고 어리석을 수 있다는 자각만으로 충분한 것 같다. 그 자각이 일어난다면 또 해결책은 스스로 찾아나가겠지.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항상 내 생각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다른 이들이 책을 읽고 신선한 자극이 되었을련지는 모르겠다.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단속사회 리뷰  (0) 2015.03.24
[책]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리뷰  (1) 2015.03.17
[게임] Godus 리뷰  (1) 2015.02.23
[책] 멋진 신세계 리뷰  (4) 2015.02.01
[세미나] 2015 부산 모바일 콘텐츠 세미나 후기  (0) 201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