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LE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 사왕진안과 다크 플레임 마스터의 엇갈린 이야기


원제: 中二病でも恋がしたい!

제작사: 교토 애니메이션

방영일: 2012년 10월 4일 ~ 2012년 12월 20일 (2012년 3분기)


주의! 본 리뷰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창을 닫아주세요.






부끄러운 중2병 생활을 탈피하고 새로운 고교생활을 꿈꾸는 우리의 주인공 토가시 유우타. 하지만 그의 평범한 이미지는 나름대로 이어지고 있긴 하나 타카나시 릿카라는 현역 중2병이 등장. 릿카와 유우타는 시험 공부를 하며 더 가까워지지만 릿카의 언니에 의해 유우타는 릿카의 과거에 대해 알게 됨. 둘은 시간이 지나며 사랑에 골인! 그리고 유우타는 릿카가 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그것이 책임이라고 느낌. 그래서 릿카는 결국 안대를 벗게 됨. 하지만 현실에 적응하려는 릿카는 현실과 자신의 세계 사이에 끼여 이도저도 못하고 점점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약한 사람이 되어감. 마지막, 유우타는 릿카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깨닫게 되고 릿카는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하며 감동적으로 마무리.


이 애니를 본다 하면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있죠. 바로 오프닝에 나오는 릿카의 손가락 돌리기(...)가 그것입니다. 아주 사람들이 그 귀여움에 많이 넘어갔다 합니다. 솔직히 좀 신박하긴 해요. 모에 요소를 극렬히 어필하려고 그런 장면까지 넣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액션신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고퀄이 뭔지 제대로 알려주는 기분이었습니다. 간간히 나오는 배틀 씬에서 나오는 화려한 연출은 이런게 교토 애니메이션이라서 가능한 건가.. 라는 생각까지 들게 하더군요.



오오..



남들은 중반부에 스토리가 너무 진지해졌다, 무거워졌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라는데 저는 몰아봐서 그런지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좋았습니다. 릿카의 중2병의 원인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충격에 현실을 부정하고, 그렇게 남들이 들어올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유우타의 중2병은 단순히 오락이나 애니메이션에 깊이 빠져들고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겨 그런 것을 흉내내었다는 것과는 좀 대조적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도 적고 어딘가 모르게 슬퍼보이는 릿카의 얼굴이 더욱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걸까요. 


하지만 릿카는 단순히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강한 의지 때문에 발버둥친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약한 마음의 자아가 강한 존재, 주도적 존재에 매료된 것입니다. 바로 릿카가 유우타의 바로 윗층에 이사한 2년전 부터 말입니다.


릿카에게 있어서 유우타는 자신을 중2병의 세계로 이끌어준 구원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유일한 접점이기도 합니다. 서로 사랑을 고백하고 행복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유우타는 릿카를 현실세계로 데려와야 한다는 이상한 책임감에 휘말려 그녀의 세계에서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릿카는 유우타를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세계를 뒤로한 채 현실에 적응하려 노력을 해 봅니다. 더 나아가 자신이 존재했던 자신의 세계를 잊기 위해 자신의 세계에 있었던 모든 것을 버립니다. 그 모든 것 중에는 유우타도 있었지요. 왜냐하면 그가 바로 자신의 세계의 창조주와 같은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홀랑 떠납니다. 현실에 존재하기 위해.


그렇게 다시 약해진 릿카에게 다시 유우타가 옵니다. 다크 플레임 마스터로서 사왕진안을 찾아와 힘을 줍니다. 그렇게 릿카의 세계가 열려 현실이 흡수가 됩니다. 바로 다크 플레임 마스터가 보여준 불가시 경계선에서 아버지에게 한 작별인사를 통해 말입니다.


릿카는 이사하기 직전 린코에게 츠유리 쿠민에게 자신의 뜻을 전합니다. "사왕진안은 계속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 돼. 다크 플레임 마스터가 살아있는 한." 이 말에도 릿카는 유우타에게 그 만큼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재회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릿카

 


두 사람의 새끼손가락




이 애니메이션은 2012년 3분기를 잠깐 빛낸 작품이었겠지만 저에게는 상당히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남겼습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내내 얽혀 사는 것인가 등등..



니부타니 신카 ㅡ "고교시절은 평범한 고교생을 하겠어. 라고 생각했었잖아? 하지만 그것 또한 틀림없이 그런 평범한 고교생같은 이미지를 자기가 멋대로 만들어서 그것에 얽메이고 있는거야."



그러한 이미지에 자기가 얽메인다. 즉 자기가 멋대로 정한 것을 흉내내는 것이 다다. 그런 말일까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스스로 다그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추구할 수 있다는 진정한 자기는 실제로 따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자기의 정체를 우리는 알 방법이 없으며 그 정체 또한 언제나 이리저리 바뀔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러한 진정한 자아, 정신 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내가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진정한 자기가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후회를 하는 이유일 지도 모르죠.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 중2병같은 것이 진정한 자기를 추구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으며 진정한 자기를 찾아 나선다는 일조차 무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할까요? 우리는 단지 걸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일을 단지 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짧은 거리든 긴 거리든 빠르고 느린 속도든 우리는 삶의 등산로를 걸어갑니다. 온 바다로 뒤덮인 행성에서 사공은 목적지를 찾는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단지 노를 저을 뿐입니다. 발버둥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삶의 등산로에는 수십억의 등산객이 있고 저 행성 바다에는 수십억의 사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현실, 자신만의 세계와 보편적 현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발버둥 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릿카도 이제 받아들이겠지요. 아버지의 죽음을.


아이고, 말을 횡설수설 제가 글을 쓰고 나니 제가 뭔말인지 알아듣기 어렵군요. 그냥 적절히 넘겨주세요 ㅎ.



츠유리 쿠민 ㅡ "릿카 쨩은 생각했던 거야.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뭐든지 시키는 말만 따르고 있는 자기보다 훨씬 솔직하고 멋지구나, 라고"



조연들은 주연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역할이지만 오히려 그런 역할 때문에 조연 역시 빛나는 것 같습니다. 


이 애니메이션 잘 보았습니다. 긴 영화를 한 편 보는 기분이군요. 난생 작품이 제게 질문을 거는 건 처음입니다. 하루종일 현실이란 뭘까, 우리 삶은 뭘까, 생각 하니까 머리가 지끈지끈하네요. 릿카와 유우타가 새끼손가락을 맞잡을 때 얼마나 흐뭇하던지.. 저도 연인 없는 사람이지만 염장 지른다는 생각은 안들더군요. 그냥 기분 좋게 잘 보았습니다. 현실적인 판타지물이라는 이름을 두면 딱 맞을 것 같네요.


그리고.. 아우아우 릿카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