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LE

[리뷰] 빠빠라기



빠빠라기

저자
에리히 쇼일만 지음
출판사
정신세계사 | 2009-12-3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대자연이라는 거울에 비춰 까발려진 문명인들의 실상투이아비 추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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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어느 섬, 어느 원주민의 추장인 투이아비는 선교사에게 서양 문물을 배우고 더 넓은 세상을 품고자 유럽으로 여행을 갔다. 하지만 그곳에서 투이아비는 품어야 할 것보다 내칠 것이 서구 사회에 더 많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동포들에게 연설을 한다. 빠빠라기(백인)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분명 그 연설을 받아적은 독일인 에리히 쇼이어만은 투이아비가 말한 연설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그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본질을 꿰뚫는 자"라 평가했기 때문이다(아예 다른 차원의 언어이기 때문인 것도 있다). 그렇게 좋은 식으로 평가함은 편협한 부분이나 과장된 부분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 물론 책을 잘 팔기 위한 마케팅 등을 위해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만, 여전히 찜찜함은 남아있다. 그렇게 지혜로운 자가, 그렇게 자신의 통찰력을 믿고 무언가를 단정지으리라고 쉽사리 생각되진 않는다.


이 책에서는 많이 단정짓는다. 일반화도 많이 시킨다. 그게 추장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일 뿐이라고, 누가 나한테 말한다면 딱히 반박하지는 않겠다. 그래, 추장은 자기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자기 동포들에게 알리는 데 거침이 없다. 어떻게 모든 빠빠라기들은 돈을 위해 살아가고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라고 말할 수가 있는가! 가슴 아프다. 그렇지 않은 소수의 깨어있는 지식인에 대한 언급도 잠시 하지만, 그 잠시라는 것이 있어도 지식인은 여전히 억울할 것이다. 하긴, 최근에 읽은 자본 관련 책에 따르면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정말로 자본의 불평등이 극심했다고 한다. 아마도 전 국민의 90%는 오늘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추장이 사람들은 돈에 미쳤구나라 생각할 수 있겠다. 그 사람들은 사실 돈에 미친 게 아니라, 자기 자식을 위해 미쳐있을 수도 있겠지만.


모르겠다. 사실 1920년대 사회를 잘 모른다. 그러니까 투이아비가 영화관 얘기를 꺼낼 때, 어느정도의 돈이 있어야 영화관에 들어갈 수 있는지, 즉 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사회에 어떤 층을 이루고 있는지 모른다. 대충 가난한 자, 부려먹는 자, 이런 식으로 나오긴 해도 자세한 건 모른다. 사실 이 책의 의의는 거기에 있지 않다. 당연히 태생이 원주민이니 통찰력이 코난급이라 해도 이해할 수 있는건 한계가 있다. 우리가 자세히 들여봐야 할 것은 그냥 그 메세지다. 문제 제기. 돈, 공산품, 신앙, 소유개념, 성차별(?), 영화관, 신문, 생각습관 등등. 투이아비의 시선을 통해서 "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사회는 어떠어떠한 사회구나!"라고 결론짓기는 불가능하다. 단지 그가 던지는 메세지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생각해보면 된다.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투이아비가 지적한 생기 없는 눈, 지친 삶은 1920년대 뿐만 아니라 현대인에게도 크게 공감이 갈 요소다. 빠빠라기 사회에서의 삶은 원주민의 삶과 많이 다르다. 원주민의 입장에서 행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빠빠라기들은 열심히 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적하다. 스스로가 지금 행복하지 않고, 행복은 이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들의 사고방식이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 잘 부합한다면? 그리되면 그들의 메세지는 자기 인생에서 또다른 도전이자 여행이 되는 셈이다. 소유에 대해 집착하지 않아보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습관을 버려보고, 돈에 대해 가벼이 생각했는데 더 행복해질 수도 있지 않은가. 물론! 현대 삶이 행복하면 원주민은 원주민일 뿐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현대 삶에 만족한다.


이 책의 의의는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았던 사람이 우리 세계를 보고 내리는 평가라는 것에 있다.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은 신선한 자극에서 끝이 날 것이다. 우리 현대 사회가 문제투성이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변화를 시도해볼 수 있겠지만 현대 삶은 그러기에 너무 바쁘다. 이 책도 공산품 혹은 소유개념 등등이 되어 우리 삶 속에 이미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