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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멋진 신세계 리뷰





멋진 신세계라는 말은 존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왔다. 템페스트의 여주인공 미란다가 한 말이라고 한다. 템페스트라는 작품이 어떤 건지 영문도 모르는 나로써는 그 의미가 어떤 식으로 이 책의 표지를 장식하게 되었나 생각하는 것도 무리다. 존이 레니나에게 첫눈에 반하고 곧 이 세계를 평가하기를, 멋진 신세계라 하였다. 존은 결국 레니나를 혐오하고 멋진 신세계를 등진 채 자살했지만 말이다.





행복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니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그들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사실상 마땅히 행동해야만 되는 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 뭔가가 잘못되면 소마가 있지." 

ㅡ무스타파 문드 총통


나는 현재 삶, 현대 사회와 다주 달라보이는 멋진 신세계 속 사회가 실은 본질적으로 현대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통찰력, 상상력, 날카로움에 대해 경탄을 표한다. 어떻게 사회를 이런 식으로 표현했을까? 그 세계는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현실성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그 세계의 묘사는 기가 막히다.


나는 프로그래밍 공부를 한다. 프로그래밍 공부를 해서 인디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나는 어쩌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게 되었는가? 옛날부터 좋아했긴 했다만 언제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는가? 왜 그것을 좋아하는가? 나는 물론 프로그래밍이 적성에도 맞고 흥미도 있어서 재미있다. 하면 몰입도 되고 좋다. 또한 경제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이쪽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면 금전적인 문제는 웬만하면 해결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왜 프로그래밍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미스테리하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 미스테리한 부분에 개입한다. 직접 개입하여 적성이라거나 흥미를 조작하는 것이다. 비록 적성이나 흥미라는게 아주아주 애매모호한, 뇌과학적으로 실체가 없는 개념이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수면 교육법은 아주 강력하다! 게다가 조건반사 훈련으로 싫어하는 것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람은 적절한 곳에 배치되며,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프로그래밍에 친숙한 언어들로 수면 교육을 받고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만들어진다는 건 결국 현대에도 똑같다. 만드는 주체가 멋진 신세계와 조금 다를 뿐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무작위성, 가정적인 환경, 어렸을 때의 경험, 기타 생물학적 변이 요소 등에 의해 "만들어진다".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펼쳐보고 싶지만 여기선 일단 제쳐두고, 우리의 많은 부분들이 만들어진다는 건 인정하자. "나"라는 개념도 모호하다.


인간을 만드는 주체 사이에 인간의 의도가 들어갔다고 해서 "행복"이라는 것의 권위가 추락했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아니, 내 책 뒤에 뭐라고 표시되어 있는지 찬찬히 읽어드리겠다. "기계 문명의 발달과 과학의 진보가 미래에 가져올 인간적 비극을 경고한 충격적인 작품!". 인간적 비극이라. 그래 사실 그런 인위적인 방향이 들어가서 순수 생물학적으로 태어나지 않은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가짜 행복이라 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짜 행복이든 진짜 행복이든 그 본질적인 차이점은 미미함을 느끼길 바란다.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면, 그런 생물학적인 요소와 인위적인 요소가 인간을 "만드는" 데 있어서 어떤 측면이 다른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현대 사회에서 교육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가 행하는 세뇌에 대해서도 그 순수성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은 당연한 것인가? 멋진 신세계속 사회가 그렇게 끔찍하다면, 현대 사회 또한 끔찍한 것이다. 우리는 생물학적, 사회적 노예이다. 우리의 의지는 온갖 욕구와 더불어 사회적인 어떤 커다란 것에 굴복당했다. 아.


멋진 신세계 속 방식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건 그냥 내가 생각하기 싫다. 개인적으로 생물은 굉-장히 정교한 기계라고 생각한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고. 그래서 그 자연적 흐름에 개입하는 건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수면 교육이나 조건반사 훈련이 그렇게 쉽게 인간을 길들이지도 않을 것이고, 소마라는 물질도 쾌락 시스템에 비추어볼 때 현실에서의 가능성은 아득해 보인다. 생각할 가치가 없다. 어찌어찌 우리 미래가 멋진 신세계속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금방 자멸하고 말 것이다.





신비한 마약


소마. 소마라는 것도 아주 흥미롭다. 소마는 아주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마약인 주제에 내성이 없다. 내성이 없으므로, 즉 소량만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만족"스러우므로 자연히 금단증상은 있다 해도 보이지 않는다. 의존성이 있지만 공급이 무제한이므로 상관없다. 소마가 불행을 일으키는 경우는 없다. 마치 게임의 체력 포션과 같은 것이다! 이 물질도 마찬가지로 현대의 것에 오버랩됐다.


"분노를 진정시키고 적과 화해시키고, 인내하고 수난을 참도록 하는 소마가 있다 이 말이야. 옛날에는 대단히 어려운 노력을 거치고 오랜 수양을 쌓아야 겨우 도달되는 미덕이었지. 그러나 이제 반 그램짜리 두세 알만 삼키면 그러한 수양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일세. 이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네. 그러니까 덕성의 반은 적어도 병 속에 지참하고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야.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기독교 정신을 터득하는 것-그것이 소마의 본질일세." 

ㅡ무스타파 문드 총통


최근에 나는 자전거 하나를 새로 샀는데, 저번에 모래길을 자전거를 끌고 잘못 갔다가 바퀴에 묻은 모래들이 체인이나 내부 기관에 흩뿌러졌다. 맙소사. 분명 모래같은 거 체인에 안좋을 건데. 이걸 해결하려면 어서 빨리 자전거 세차를 하거나(그러기 위해 물이 들어가면 안되는 부품이나 청소하는 방법을 알아봐야 한다), 그냥 모래 들어간 것 쯤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것,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러니까 문제를 해결하거나, 문제를 문제삼지 않거나이다. 소마는 극단적인 형태로서 후자를 나타낸다. 멋진 신세계에서 나타나는 예상치 못한 대부분의 문제들은 외부 요인을 바꿈으로써 해결할 수 없다. 이를테면 야만인 보호구역에서의 끔찍한 종교의식은 레니나가 저지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총통이 말한 소마의 본질 그대로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마가 나타나는 효과를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적지않다. 명상을 하거나, 종교적인 가르침을 실천하거나, 책을 읽으며 생각을 넓히거나, 일기를 적으면서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문제 해결에 있어 소마는 그런 수단들과 비슷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현대의 그런 해결방법은 소마에 비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이 과정의 차이가 소마와 그것들의 본질적인 차이를 만든다 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어쨌든 비슷한 면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종교?


제일 마음에 드는 인물이 총통이므로 인용구가 전부 총통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총통과 존, 헬름홀츠가 한 대화가 좋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볼 거리는 또 있다.


"종교적 감정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저절로 성장하는 경향이 있다. (중략) 우리는 영속성이 있는 무엇,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무엇-다시 말해서 실체, 절대적이면서 항구적인 진리 같은 어떤 것에 의지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중략) 앞길이 창창한 젊은 시절에만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 신으로부터의 독립은 최후까지 인간을 안전하게 인도하지 못한다."

ㅡ무스타파 문드 총통이 철학가 멘 드 비가 쓴 책을 읽으며


그러면서 총통은 이제 노년이라는 게 없으므로 종교는 버렸다고 얘기한다. 과연 그럴까? 이 책에서 "주 포드" 혹은 "포드여!" 하는 말이 꽤 많이 보였다. 현대에서 "오 하느님!"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결국 절대적이면서 항구적인 진리를 이 사회에서도 조장한다. 조건반사 훈련과 수면 교육을 통해 포드라는 것에게 절대성을 부여한다. 신에게 의존하진 않지만 그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거기에 의존한다. 그들은 순수과학과 예술과 종교를 버렸다고 했지만 사실 한 단계 비꼰 것이다. 똑같은 역할을 인위적으로 비튼 것에 불과하다.


어색한 끝마무리


책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안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주저리주저리했다. 평소에 생각하는 주제들을 잘 다뤄주고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여튼. 현실성은 부족하지만 현대를 돌아보게 해주는 치밀한 묘사와 설정. 비관적인 거랑 상관없이 재밌게 술술 읽었다. 이 글에서도 몇 번이나 묘사가 뛰어났다고 말한 이유는 그 세계가 잘 짜여져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허술한 면은 허술한 대로 보여준다. 아이슬란드도 다소 희망적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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