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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단속사회 리뷰




이렇게 타자와의 만남이 사라지고 개별화/동질화된 세계에서 인간의 경험은 축소되고 국지화된다. 경험은 낯선 것과는 단절된 채 비슷한 것, 동질적인 것 안에서만 무한 반복된다. (중략) 사냥감이 되지 않기 위해 동일성에만 숨어들게 되면서 우리의 경험은 축소되고 성장의 기회는 봉쇄된다. 이것이 사냥꾼의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한 안전의 댓가다. - 61p


처음에 첫 표지의 소개 문구를 보고 좀 약이 올랐다. 네가 뭔데 개인의 관계를 단정짓고 이 사회를 단정짓나.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다. 네가 분석한 이 사회는 사실 이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큰 의미가 없다. 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금도 이런 나의 생각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재미있다. 이 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나를 공감시켰다. 저자의 통찰력은 흥미로웠고 내가 줄곧 잊고 와 있었던 것을 한 번 일깨워 준 것 같았다.


단속사회에서 단속은 어떤 뜻인가. 크게 두 가지다.(이 책에서는 네 가지로 설명했지만 그냥 내 입맛대로 말하겠다) 스스로를 혹은 남을 감시한다는 뜻의 단속과, 개인간-개인과 사회간-사회 자체 연속성의 반대인 단속. 이러한 단속 사회가 만들어진 이유는 역사적으로 개인주의, 자유주의, 법치주의 등의 사상이 발전한 것도 있고 국가 혹은 권력층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도 있다. 그리하여 현대의 사람들은 사적인 이슈를 공적인 이슈로 전환하는 능력이 약하고-즉 남의 얘기를 잘 듣지 못할 뿐더러 남에게 이야기도 잘 못하게 되었고, 사회와 개인은 단속(연속의 반대)되어 배움과 발전을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표현하기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듣고서 오해 해버리고,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이라면 무작정 화를 낸다. 진정한 친구가 되겠다는 자세로 다가가면 그 당사자는 불쾌할 것이다. 온전한 관계로 나아가려면 불편하게 들리는 것도 스스로 곱씹어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청을 통해 더 나은 경험이 이어질 수 있기에 경청은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경청을 잘 한다면 사회는 매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겠다, 이게 나의 생각이었다.


말이 나눔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근심과 걱정이 타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설사 그것이 사적인 투덜거림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자신만이 아닌 모두의 이야기, 아니면 적어도 사회적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 186p


경청만이 중요한 게 아닌 건 새삼스럽게나마 이 책을 읽고 깨우쳤다. 말하는 것. 표현하는 것. 사회적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로 만들어내는 작업. 공론화. 이것의 중요성 자체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사회와 개인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것처럼 경청과 표현도 같이 가는 건데 말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역사속 인물이 사회를 바꿔왔지 않은가. 이 깨달음은 내 대인관계를 다시금 생각해주는 훌륭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려도 논리적으로 전혀 손색이 없어 만족했다. 이제는 사회 탓도 할 차례다. 스스로에게만 의문을 쏘아붙이지 말고 바깥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


절대 남이 부담스러워할 만한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 나아가 인터넷 커뮤니티든 아파트단지든 간에 우리의 일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정당성에 대해 고뇌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는 순간, 즉 예의바름이 기준을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상대방에게 모독이 되어버린다. - 80p


막막하다. 의문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공론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분명 일상적인 일의 정당성에 의문을 표할 때 반감만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잘못이긴 하지만, 매력적으로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이는 너무 힘든 일이다. 여태껏 눈치만 보면서 살아온 습관도 있고, 잘 말하는 것을 배울 기회도 없었다. 정리한답시고 독후감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도 좀 사회에 얘기를 걸어보겠다는 건데 사람들이 알아듣게끔 쓰는 것조차 어렵다. 사람 대 사람의 관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비록 본질적으로 끊어져 있다 한들, 표면적으로라도 연결되어 있는 게 난 더 좋은 모양이다. 그러나 변화를 위해 작은 것부터 시도해 볼 용의는 얼마든지 있다.


용기 - 이규경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해요


최근 우연히 본 시다. 나에게 지침을 내려준 것이 참 신기했다. 표현하려면 우선 용기가 필요하다. 현란한 말빨과 글빨을 가지고, 인간적인 매력도 겸비해야겠지만 용기가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 평소에 "겁"은 진화의 소산이라면서 스스로 합리화하고 내버려두지만, 지금 겁은 조금 조금씩 물리쳐야 한다.



직관적인


책을 삐딱하게 볼 부분은 많다. 인간의 심리를 얘기할 때에는 단순히 어떤 사상이 발전해서 사람들의 경향이 그러하게 됐다고 결론내릴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전에 출현했다. 인간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나에 대한 이해는 가장 오래된 문서(만여 년 전)까지 연구해도 온전할 수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권력층이 내부적 경쟁으로 '탈락에 대한 공포'(207p)를 조성한다고 했을 때,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약할 수 밖에 없다. 감정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에 모호한 점이 너무 많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접근은 인문학과 과학이 같이 가야 한다.


지식과 경험의 측면에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책에서는 지식과 경험은 사람 대 사람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경험 많은 어른과 이제 사회에 발을 내디딘 젊은이가 서로 대화하면서 사회가 계속 이어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지식과 경험은 사람 대 사람으로만 통하는 건 아니다. 인터넷, 각종 서적과 논문. 제지 기술과 컴퓨터. 얼마나 잘 되어 있는가. 옛날에는 경험을 보전하기 위해 지었던 건물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을 진 몰라도, 지금은 (선진국 기준으로) 누구나 쉽게 기록을 열람하고 공부할 수 있다. 기록을 남기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공통의 것이 없어도 소통은 일어나지 않으며, 차이가 없어도 소통은 일어나지 않는다." - 169p


꼬롬하게 자잘한 부분을 공격한다면, 위 말은 증명될 수 없다. 공통의 것이 없는 것, 차이가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어느 정도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설사 복제 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복제 여부, 물리적 위치, 복제 시점으로부터 갈리는 경험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인문적 통찰만으로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소통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이 인류의 방대한 역사를 연구하거나 심리학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어려운 부분이다.


저자는 자기가 직관적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책 전체적으로 어려운 말을 쓰긴 하지만 논리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나에게 어떤 움직일 동기를 주었다는 점에서는 아주 기분을 좋게 한 책이다. 


책에 끝에서는 독자들에게 명료한 메세지를 남긴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권력층들에게 휘둘리는 귀와 입이 막힌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걸고 적극적으로 경청하자는 것. 그렇긴 하지만, 권력층에게는 휘둘리지 않고 귀만 열려있는 나는 이 메세지보다는 "공론화"라는 단어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 책을 내 것으로 품고 다시 내 블로그로 표하는 것도 입을 슬금슬금 여는 작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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